[도시와 라이프] 공간의 기억을 활용한 마케팅
[도시와 라이프] 공간의 기억을 활용한 마케팅
  • Door 콘텐츠팀
  • 승인 2019.05.2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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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기억을 담는다. 기쁨이나 슬픔과 같은 도드라지는 감정에 휩싸여 있을 때 들었던 음악이 당시의 기억을 끌어당기는 것처럼 공간도 그렇다. 공간은 추억을 강하게 붙잡아 준다. 잊고 있던 기억도 그 기억이 담긴 공간을 찾아가면 거짓말처럼 다시 살아난다.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이 확정된 이후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순례`가 이어졌다. 공간에 녹아 있는 기억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고 영원히 떠나보내기 위한 애도 과정이었을 것이다. 태어나고 자라며 울고 웃던 추억을 무려 5930가구의 사람들이 같은 공간으로 공유하고 있었으니, 개인의 애도 과정이 사회화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파트에서의 추억을 기록하는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라는 프로젝트라든가, `집의 시간들`이라는 영화는 바로 그 산물이다.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가 저서 `공간의 시학`에서 "추억은 잘 공간화되어 있으면 그만큼 더 단단히 뿌리박아, 변함없이 있게 되는 것이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하지만 마냥 이렇게 감성적이기만 할 것 같은 공간과 기억의 관계에 대한 주제는 낭만적인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는다. 공간과 기억, 다르게 말해 기억에 각인시킬 만한 공간에서의 경험을 마케팅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점이 위치한 동네 커뮤니티 공간의 이미지를 그대로 브랜드 마케팅으로 활용한다든지, 소비자 경험을 극대화하는 매장으로 인테리어 디자인을 꾀하는 등의 사례가 그런 것이다. 

지난 3일 서울 성수동에 1호점을 연 블루보틀의 사례가 동네 이미지를 활용한 사례 중 하나다. "왜 성수동이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성수동이라는 공간의 기억과 그 기억이 쌓여 만들어진 공간의 이미지와 관련 깊다. 성수동의 이미지는 준공업지역이 갖는 날것의 거친 질감에 있다. 

예전에 봉제공장, 수제화공장, 피혁공장, 창고 등이 많았던 이곳은 최근 젊은이들의 감각으로 옛 공간성과 물성이 되살려져 새롭게 변신했다. 물류창고로 쓰인 붉은 벽돌 건물은 대림창고라는 세련된 카페로 변해 화제가 됐고, 1970년대 건물을 그대로 살린 카페 어니언 등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성수동을 찾은 사람들이 경험해 얻게 될 기억은 공장 용도로 쓰던 옛 건축재료의 물성에서 뿜어나오는 날것의 이미지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커피 맛을 위해 장인정신을 발휘한다는 블루보틀의 이미지와 공진한다. 앞으로 많은 이들은 블루보틀을 떠올릴 때마다 성수동이 쌓아놓은 기억을 함께 환기시킬 것이다. 

제주맥주도 마케팅을 할 때 주변 공간의 기억을 활용했다. 제주맥주는 지난해 6월 연남동 경의선숲길(연트럴파크) 바로 옆 랜드마크 카페를 한 달간 빌려 `서울시 제주도 연남동`이란 이름의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연남동에서 맥주를 마신 경험은 강렬하다. 연트럴파크 잔디밭 위에서 맥주를 마시는 기억과 연남동의 자유분방한 이미지는 그대로 브랜드에 녹아들었다. 하루 평균 2000명에 달했던 방문객의 기억은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에 기록돼 확산됐다. 

가로수길의 애플스토어는 고객 경험을 위해 스태프와 고객 간의 경계를 허물어버렸다. 이곳의 스태프들은 고객들과 섞여 애플 제품을 소개하며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 경험은 기억이 되고 이미지가 되어 브랜드를 구축한다. 아마존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계산대와 점원이 없는 매장, 아마존고를 열어 최첨단의 기억을 남기려 한다. 온라인 유통이 활성화되면서 오프라인 매장의 힘이 꺾이는 이때에 경험을 강조하는 공간의 중요성이 커진다는 역설은 흥미롭다. 

`스토어 디자인, 경험기반 리테일`이라는 책을 쓴 건축가 브렌던 맥팔레인(Brendan MacFarlane)은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며 "경험기반 스토어는 상품을 둘러싼 공간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고객에게 어떤 공간을 만들어 어떤 경험을 선사할 것인가. 그리하여 어떤 기억을 쌓아나갈 것인가. 온라인의 시대로 접어들수록 이런 도전은 거세지고 있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음성원 도시건축전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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