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라이프] 반지하의 마력
[도시와 라이프] 반지하의 마력
  • Door 콘텐츠팀
  • 승인 2019.05.2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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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희동의 거리가 이른바 `핫 플레이스` 중 한 곳으로 떠오를 수 있던 데는 반지하 상점의 힘이 크다고 본다. 1층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아 보이는 반지하와 지상부보다 살짝 높은 위치에 올라서 있는 1층 공간이 한데 어우러지며 상점들의 다양성을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반지하 상점이 없었다면 거리를 걷는 이들 입장에서는 좀 심심한 공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행동 양식은 반지하 공간의 매력을 잘 설명해준다.인간이 걸을 때는 자연스럽게 10도가량 고개를 살짝 숙인다. 이는 인간이 앞에서 나타날 수 있는 예기치 못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진화했기 때문이다. 계단으로 3~5칸 내려온 깊이, 거리의 지면보다 1m가 채 되지 않는 깊이에 꾸며진 상점은 10도 정도 각도로 뻗어나가는 거리에서의 시선을 온전히 다 받아줄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거리를 걸으며 반지하 공간 전체를 손쉽게 조망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거리와 건물 안쪽은 자연스럽게 시각적으로 연결된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시야보다 약간 아래쪽에 있는 모습이 정면으로 볼 때보다 더 예뻐 보인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에드워드 홀은 `숨겨진 차원`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5도 각도의 시각은 상대방의 얼굴 위아래 부분을 아주 뚜렷이 보이게 하며 얼굴의 평면과 굴곡이 강조된다. 물체의 3차원적 질감이 특히 두드러진다."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냥 `얼짱 각도` 효과라고 말하면 어떨까. 

반지하가 만들어내는 깊이는 거리와 건물 사이의 상호작용을 극대화하면서도 부담스러운 눈 마주침은 최소화할 수 있게 도와준다. 엘리베이터 공간에서 서로 시선을 피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라. 거리와 같은 높이의 공간은 거리 안팎의 사람들 간 시선 처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외부에서 내부 공간을 감상하기도, 내부에서 편하게 앉아 있기도 힘든 공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거리와 레벨이 같은 공간에 임대 안내 광고문구가 붙어 있는 모습을 많이 봤다. 이런 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부 공간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넓거나, 시선을 차단하는 관목을 심는 등의 보완책을 쓸 수 있긴 하지만,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할 소규모 자영업자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반면 너무 깊은 반지하는 이런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외부에서 안쪽을 볼 때 각도가 너무 깊어지면 시선이 공간 전체를 품지 못한다. 안쪽까지 깊이 시선이 들어가지 못한다.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고개를 많이 들어야 바깥을 볼 수 있어 거리와의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기 쉽지 않다. 일정 깊이 이상이 되면 반지하가 아니라 그냥 지하다. 

연희동 단독주택의 반지하 공간은 차고나 운전기사 휴식공간, 식모방 등으로 썼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쓸모없는 공간으로 전락해 버려져 있었다. 불과 7~8년 전만 해도 반지하는 그저 비어 있는 곳, 쓸모없는 짐으로 가득 차 있었고, 담장에 가려 거리에서는 보이지도 않았다. 

저성장 시대가 이어지면서 이 남은 공간을 활용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프라이버시를 강조하던 담장이 철거되고, 반지하가 외부에 드러나자 몰랐던 가치를 발견하게 됐다. 집 일부를 공유하면서 등장한 에어비앤비처럼 저성장 시대가 만들어낸 제약은 창의적인 공간 활용과 생각지 못했던 가치를 만들어냈다. 주택 반지하 공간이 소매상에게 최고의 공간이 될 줄 누가 알았겠나. 

골목상권으로서 연희동의 성공은 담장 뒤 숨어 있던 공간을 외부로 끄집어낸 동네 건축회사인 쿠움파트너스, 그리고 반지하의 가치를 알고 이른 시기에 상대적으로 낮은 임차료로 사업을 키운 소상인들 눈썰미가 결합돼 나타난 결과다. 차고를 외부에 드러내어 작게 쪼개 창업이 손쉬운 공간을 마련하고, 반지하의 가능성을 일찍부터 간파해 터를 잡고 사업을 키운 이들, 이들이 바로 `로컬 크리에이터`다. 골목상권을 만들어 서비스 산업으로의 전환을 이끈 로컬 크리에이터가 도시 재생의 키워드다. 

[음성원 도시건축전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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