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라이프] 동네의 힘
[도시와 라이프] 동네의 힘
  • 음성원
  • 승인 2019.06.03 11: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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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에 사는 사람들은 캠던 마켓(Camden Market)을 최근 유행하는 장소로 꼽았다. 최근 런던을 방문한 김에 마침 숙소 근처에 있어 세 차례 가봤다. 작은 골목길, 골목을 따라 이어지는 작은 상점과 식당, 비건 햄버거와 조각 피자, 부리토, 치킨 등 각양각색의 스트리트 푸드가 눈에 띄었다. 옷가게와 헌책방, 그리고 하천도 이곳의 매력을 높이는 요소였다.리젠트 파크에서부터 이어지는 하천인 리젠트 커낼은 작은 배를 타며 주변을 둘러보는 사람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 어우러지도록 만들어주며 동네 분위기를 한껏 매혹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아니, 실제로도 많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처럼 보였다. 건물의 층수가 기껏 해야 2층을 넘지 않고, 두세 걸음만으로도 지나칠 만한 작은 매장이 무수히 이어지는 `휴먼 스케일`의 동네였기 때문이다. 작은 공간에 들어서면 사람의 얼굴 표정까지도 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공간에 들어섰을 때는 인간의 존재가 상대적으로 덜 의식돼 표정을 볼 겨를이 없지만, 규모가 작은 공간에서는 그곳에 존재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더 커 보인다. 그에 따라 얼굴의 표정까지도 좀 더 쉽게, 자세히 인지하게 된다. 서로 표정을 본다는 것은 감정을 공유한다는 뜻이다. 즐거운 곳을 즐기는 이들의 표정이야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그들의 표정은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며 공간의 활력도를 높인다. 

흥미로운 점은 캠던 마켓의 특징이 서울에 사는 내게도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런더너들이 좋아하는 동네는 서울에서 인기를 끄는 동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작은 매장들, 작은 골목길, 다양한 먹을거리…. 이런 것이 이른바 `핫 플레이스`의 공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휴먼 스케일의 외부 환경은 그 자체로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 

다만 두 도시의 맥락은 다르다. 고딕과 바로크, 르네상스 양식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도처에 즐비한 런던이란 도시는 건축물의 매력만큼이나 진지한 곳이다. 노동집약적인 조각들이 곳곳에 새겨져 있는 건축물이 끝없이 이어지는 도시, 그 건축물 하나하나에 내려앉은 시간의 손때가 묵직하게 다가오는 걸 느낀다면, 어느 순간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을 넘어 엄숙해질 때가 있다. 이 진지함을 일상으로 느끼는 이들은 가끔씩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을 수도 있겠다. 캠던 마켓같이 오밀조밀하고, 트렌디하면서도 가벼운 느낌의 동네는 런더너들에게 완전히 `다른 곳`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반면 자동차 규모의 도시, 사각의 아파트, 유리 외벽의 커튼월 빌딩, 모던한 생활공간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서울 사람들은 보다 인간적인 규모의 동네, 1970~1980년대 건축물의 감성, 2~3층 수준의 휴먼 스케일의 공간에 들어가면서 일상에서 벗어난 듯한, 마치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일상의 탈출. 그것이야말로 사람들이 소비하는 공간의 핵심 요소가 아닐까. 신촌이나 경리단길, 삼청동이 왜 힘겨워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런 관점으로 답을 할 것 같다. 그 동네에서 일상의 탈출을 경험할 수 있느냐고. 홍대가 상수와 연남동으로 확장되면서 신촌은 서울에서 찾기 쉬운 흔한 동네가 되어 버렸다. 미군이 많아 자유로운 미국 문화가 스며들어 있던 이태원의 이미지 역시 다른 곳에 수없이 복제되면서 힘을 잃었다. 이태원 상권이 확장돼 성장한 경리단길이 어려워진 것은 이 때문이다. 한옥 색깔이 강한 익선동의 등장은 보다 현대화돼 버린 삼청동의 방문객을 빼앗아갔다. 

 


결국 일상과 다른 강력한 아이덴티티의 존재가 동네의 힘을 만들어낸다. 휴먼 스케일의 공간 등과 같은 기본 조건이 충족됐다면, 동네 특유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할 수 있느냐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한옥과 같은 물리적 환경일 수도, 과거 이태원이 갖고 있던 동네 특유의 문화적 오라(aura)일 수도 있다. 로컬 특유의 진정성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서비스산업이 부흥하는 동네를 만드는 도시 재생의 관건이 아닐까. 

[음성원 도시건축전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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