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살롱] FIRE族, 밀레니얼의 은퇴를 생각하다
[도시살롱] FIRE族, 밀레니얼의 은퇴를 생각하다
  • 이아연
  • 승인 2019.08.24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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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뉴욕에서 오랜 친구를 만났다.

맨해튼 5번가에 살고 있는 변호사로, 취향이 비슷한 연유로 함께 술과 커피에 가산을 탕진하며 절친이 된 사이였다. 서로의 도시에 방문하는 사람에게 거나하게 저녁을 대접하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었는데, 그는 이상하게도 집에서 내린 커피를 내밀며 센트럴파크에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혹시 내가 빌려놓고 갚지 않은 돈이라도 있는 건가 고민하며 벤치에 앉자마자 그가 말을 꺼냈다.

"실은 나 지난달부터 `FIRE(파이어)`족으로 살기 시작했어." FIRE는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경제적인 독립을 이뤄 조기에 은퇴한다)`의 약자로, `짠테크`로 단기간 저축액을 극대화해 40대에 은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수입의 60~80%를 저축하는 목표를 갖고 있기에 여름에는 에어컨을 켜지 않고, 커피는 집에서 내려 마시고, 떨이상품으로만 식료품 쇼핑을 해서 요리를 하는 등 이들의 노력은 짠내가 폴폴 난다.

원하지 않는 직장에 65세까지 머물지 않고, 일찍 은퇴해 선택이 보장되는 삶을 꿈꾸는 이 운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빠르게 폴로어를 늘리고 있다. 대표 블로거인 `미스터 머니 머스태시`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다 서른 살에 은퇴했고, 그의 FIRE 생활 팁은 190개국에서 520만회 다운로드됐다. 시애틀에서 열리는 워크숍은 참가비만 425달러인 주말모임인데도 모집 시작 후 1분 만에 매진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물론 비판도 적지 않다. FIRE족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고소득자여야 하기 때문이다. 입소스가 수행한 설문에서 미국 밀레니얼의 66%가 노후를 위한 저축을 전혀 하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대부분의 밀레니얼은 렌트와 대출이자를 내고 나면 저축할 가처분소득이 거의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디언이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 선진 8개국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은퇴한 연금생활자들의 실질소득이 안정적으로 증가한 반면 젊은 층은 경제위기와 함께 소득이 줄어들었다. 이는 해당 기관이 자료를 수집한 이래 처음 있는 현상이다. 프랑스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연금생활자들이 50대 이하 가구들보다 더 많은 가처분소득을 창출한 것으로, 미국과 이탈리아에서는 35세 이하가 80세 이하 연금생활자보다도 소득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디언은 전쟁이나 자연재해 시기를 제외하고 젊은 성인의 가처분소득이 나머지 연령층과 비교해 떨어지는 현상은 산업화 이후 처음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MZ세대는 한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다 은퇴하면 평화로운 노후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일찌감치 버렸다. 우리나라만 해도 젊은 직장인 중 본인이 국민연금 혜택을 충분히 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이들은 FIRE족이 되거나, 긱이코노미로 부가수입을 만들거나, 아예 다른 은퇴 대안을 찾는다. 노마드리스트(nomadlist.com)에서는 현재의 저축액과 수입을 입력하면, 전 세계 어느 도시에서 몇 살이 되었을 때 은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페이지가 있다. 서울에서 월 300만원을 벌고 반절을 저축한다면 호찌민에서는 39세 혹은 방콕에서 48세에 은퇴할 수 있는데, 암스테르담에서 은퇴하고 싶다면 96세가 돼야 한다.

이렇듯 밀레니얼의 재정계획과 은퇴의 모습은 이전 세대와 확연히 다르다. MZ세대가 삶을 바라보고 각 생애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이전 세대와 완전히 달라졌고, 그에 따라 다양한 시도와 실험이 나타나고 있는 시기다. 사회제도적으로 출구가 제공되지 않으니 개인적으로 출구를 찾아나서는 것이다.

얼핏 FIRE와 YOLO(욜로)가 상충돼 보이는 것은, YOLO가 생각 없이 흥청망청 소비하는 트렌드로 오해되기 때문이다. MZ세대가 가장 중요시하는 시간과 자유, 그리고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YOLO의 삶이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FIRE 운동이다.

"나에게는 얼마만큼의 돈과 물건이 있으면 충분한 삶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며, 모든 사람이 차를 사고, 집을 사고, 그를 위해 65세에 은퇴하는 것이 MZ세대의 YOLO에 도무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뉴욕에서의 첫날, 친구가 가장 좋아한다는(했었다는) 식당에서 저녁을 샀다.

우리는 피자와 와인을 마시며 45세에 은퇴한다면 어느 도시에서 만날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FIRE를, 나는 YOLO를 즐기는 순간이었다.

[이아연 셰어하우스 우주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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