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통해 세상을 보다] #9 휴일에 찾은 툇마루
[커피를 통해 세상을 보다] #9 휴일에 찾은 툇마루
  • 그레이스 박
  • 승인 2019.10.04 1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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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을 맞아 여러 곳의 카페를 방문했다. 그런데 무언가 마음이 허전했다. 정말 요즘에는 공간, 커피, 운영 방식들이 훌륭한 카페들이 많이 생겨, 웬만한 카페를 가도 감흥이 덜했다. "거기 정말 좋더라고요. 한번 가보셔요." 라고 추천 할 만한 카페들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투어의 마지막은 한남동에 위치한 오리앙떼였다. 돌산 속 음료 사진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하도 많이 접해, 이미 익숙한 곳이었다. 여기도 막상 가서 실망하면 어떻게하지 라는 걱정과 함께 조심스레 향했다.

구불 구불한 한남동 뒷골목을 지나가니, 카페는 근린주택 반지하에 위치해 있었다. 아기자기한 인스타사진과는 달리, 가게 건너편은 공사판이었다. '아니 왜 여긴 또 이런 곳에 자리 잡은 거야?' 지하를 내려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다행이었다. 가게는 내부에 목재와 빛을 잘 배치하여,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자아냈다. 마감재를 하나하나 섬세하게 선택한 흔적이 보였다. 장소는 반지하인데, 공간은 갤러리 같았다. 

근린주택 반지하에 위치한 오리앙떼
근린주택 반지하에 위치한 오리앙떼
바깥 소음과 단절된 차분한 실내
바깥 소음과 단절된 차분한 실내

커피 스탠드에서서, 아메리카노와 모나카 아이스크림 그리고 빨간 것(아이스티)을 하나씩 주문했다. 커피는 다크초콜릿 같은 과테말라 원두와 블렌디드 원두가 있다고 했다. 둘 다 쌉쌀하나, 묵직함의 정도가 다르다고 했다. 산미 있는 커피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조금 아쉬웠다. '여기도 허탕인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덜 묵직하다는 과테말라를 주문했다.

예쁘게 플레이팅 된 모나카 아이스크림과 빨간 것, 그리고 커피가 나왔다. 정갈한 차림이 맛나 보였다.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오, 기대 이상이었다.  쌉싸름하기만한 커피가 아니었다. 쌉쌀하지만 살짝 산미도 있고, 달콤했다. 과테말라커피가 이렇게 맛있던 커피였던가. 커피를 권해준 마스터가 왜 다크초콜릿 같다고 이야기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아이스크림도 좋았다. 알갱이가 살짝 살짝 씹혀서 여쭤보니, 이천 쌀을 사용한다고 했다. 곁들어진 누룽지에 얹어 먹으면 식감이 배가 된다고. 바삭한 누룽지에 아이스크림을 가득 얹어 먹으니, 고소하고 달콤한 맛이 잘 어울렸다. 역시 아이스크림은 탄수화물과 함께 먹어야 제맛인 것 같았다. 이번에는 모나카 껍질에 얹어 먹었다. 모나카 껍질은 얇고 바삭한데, 찹쌀 특유의 고급진 맛이 났다. 이것 찹쌀 모나카인가봐요? 여쭤보니, 식감을 위해 일부로 찹쌀 모나카를 사용했다고 하셨다.

디저트 정성껏 만들어 플레이팅한 디저트
디저트 정성껏 만들어 플레이팅한 디저트
양갱 은은한 단맛이 별미인 흑임자 양갱
양갱 은은한 단맛이 별미인 흑임자 양갱

이번에는 오리앙떼의 시그니쳐라 불리는 빨간 것(아이스티)을 마셨다. 히비스커스를 우린 티라고 하였다. 히비스커스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한 입만 마시고 옆사람에게 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마셨다. 이것 또한 반전이었다. 새콤함, 은은함, 달콤함이 잘 어우러지는 음료였다. 히비스커스는 아주 은은하게 향이 나며, 곁들여진 상큼한 레몬과 잘 어우러져 있었다. "히비스커스의 향이 과하지 않아서 좋네요"라고 이야기하자 마스터는 은은하게 맛을 내기 위해서 이틀간 우린다고 하였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게였다. 주문한 메뉴를 모두 먹고, 마지막으로 흑임자 양갱을 주문했다. 수제로 한개씩 만든다던 양갱은 과히 달지 않아, 부드럽고 은은했다.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디저트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공간이 음식과 어울려 편안하게 느껴진다는 이야기에 마스터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사장님께서 한국의 정서를 담기 위해 애쓰셨다고 했어요. 자세히 보면, 입구도 ㄷ자, 커피 스탠드도 ㄷ자, 좌석의 배열도 ㄷ자예요. ㄷ자인 우리의 툇마루의 느낌을 가져왔답니다. 우리 조상들은 툇마루에 걸쳐 앉아 구름도 보고, 정원도 보고, 누룽지도 먹었잖아요. 그 느낌을 살리고자, 천장은 구름의 형태를, 아래에는 조그만 정원을 배치했어요. 또 잘 보시면 벽면 한 귀퉁이에 등을 설치하여, 햇살이 내리쬐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게 해두었답니다." 마스터의 설명을 듣고 있으니, 이 반지하가 왜 세련되면서도 편안하게 느껴졌는지 알 수 있었다.

빛 햇살처럼 내리쬐게 만든 조명
빛 햇살처럼 내리쬐게 만든 조명

가게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음 깊숙한 곳에 있던 궁금한 질문을 꺼냈다. "그런데 왜 이 공사판 끝에 가게를 오픈하신 건가요?" 마스터는 조금 쑥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 앞에 아파트와 큰 공원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미래를 보고 선점하셨대요. 이 입지, 나름 인기가 많은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아 맞다. 그랬다. 이 앞 공사장에는 그냥 건물이 아니라, 한남 더힐에 버금가겠다는 포부를 지닌 나인원한남이 들어서고 있었다. 이제 곧 준공 예정인 나인원한남이 들어서면, 확실히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을 것 같았다.

아파트에 사는 우리에게 툇마루는 추억 속 먼 이야기가 되었지만. 이 공간에서 그 기억을 떠낼 수 있어 좋았다. 한국의 맛을 모던하고, 편안하게 표현한 공간. 그 곳에서 우리다운 디저트를 먹을 수 있던 좋은 시간이었다.

[그레이스 박]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분석하는 건물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의 마음이요. 그래서 진짜 소비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요즘엔 카페를 열심히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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