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라이프] 뜨내기들의 도시
[도시와 라이프] 뜨내기들의 도시
  • 음성원
  • 승인 2019.11.18 1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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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학생들은 자기 방을 잘 꾸미는 경우가 적다고 하더라고요."

최근 만난 이원제 상명대 디자인대학 교수는 요즘 학생에 대해 말을 꺼냈다. 그들의 집과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하다 이 주제로까지 이어졌다. 이 교수는 학생들과 함께 밀레니얼 세대의 `단기 거주`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잠깐을 살더라도 살고 싶은 방과 집, 자취촌으로 바꾸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그가 관찰한 학생들은 자신의 집을 아니, 자취방을 꾸미지 않았다. 서울 바깥에 있는 대학 주변에서 자취하는 이 학생들은 서울로 이주를 꿈꾼다고 했다. 취업 기회가 서울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의 방을 꾸미려 하지 않는다. 아니, 꾸미지 못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곧 떠날 동네이기 때문이다. 떠나야만 하는 자신의 방과 그 방이 위치한 동네에도 애정이 닿지 않는다. 이들이 서울에 오더라도 마찬가지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선택한 집은 더 좋은 환경을 찾아 반드시 떠나야만 하는 공간이다. 뜨내기들이 모여 사는 도시는 꾸며지지 않는다.

공간을 꾸민다는 행위는 장소에 대한 마음과 연결돼 있다. 따라서 복지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게 봐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공간을 꾸미며 정체성을 표출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방 안 책장에 온 가득 책을 꽂아 인테리어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 개인화된 공간은 다시 양의 되먹임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강화한다. 책이 쌓여 있는 공간에 놓인 사람은 자연스레 손에 책을 든다.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다시 건축이 우리 모습을 만들어간다."

나의 것, 나만의 공간을 꾸밀수록 그 공간에 대한 애착도는 높아진다.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나만의 공간이라는 인식은 그 공간을 특별한 곳으로 만든다. 그런 공간에 대한 애착은 다시 자기 자신에 대한 애정으로 연결된다. 자신의 정체성이 녹아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아기 때부터 덮던 `안심담요(security blanket)`가 나이 든 뒤에도 안도감을 주는 중요한 매개체인 것처럼, 개인화된 공간은 보호받는 느낌을 주는 중요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이런 공간의 존재는 그 자체로 개인의 자존감을 획득하는 중요한 피신처로 작동한다. 그런 점에서 개인 공간은 시민을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다.

살고 있는 방에 대한 애착이 없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자존감을 높이는 장소로서의 느낌을 얻기는커녕, 공간으로부터 얻는 `안심담요 효과`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샘 고슬링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심리학과 교수는 자신의 책 `스눕`에서 방을 어떻게 꾸며 놓았는지를 보고 방 주인의 개인적 특성을 찾아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꾸미지 않는 방, 꾸미지 않는 도시는 누가 사는지 알 수 없는 공간인 셈이다. 주인이 없는 도시, 마음이 붕 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도시는 삭막하다.

서로 애정을 가지고 꾸미지 않는 공간에 사는 이들의 공간 경험은 그리 유쾌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곳곳에는 이처럼 떠나려고 준비하는 이들과 그들이 사용하는 공간을 숱하게 볼 수 있는 것 같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오래된 아파트다. 조금씩 꾸미고 가꾸면 분명 훨씬 더 예쁘게 살 수 있을 만한 오래된 아파트들이 누가 더 처절해 보이느냐를 경쟁하듯 방치돼 있는 경우가 많다. 재건축을 기다리는 사람들 입장에서 아파트와 그 주변을 꾸미는 일은 예산 낭비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정원이나 텃밭처럼 자신이 직접 꾸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면서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애착을 높이기 위한 시도가 등장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커뮤니티의 등장과 도시 재생의 지향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열심히 보도블록을 새것으로 갈아 끼우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사용자의 행태와 심리를 배려하는 도시 설계도 절실하다. 도시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그 감정이 다시 자신의 방으로까지 전이됐을 때 시민에게 조금은 더 나은 삶이 펼쳐지지 않을까.

[음성원 도시건축전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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