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기행] 오랜시간 천천히 | 무심헌
[지안기행] 오랜시간 천천히 | 무심헌
  • 박지안
  • 승인 2019.11.22 1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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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헌 전경
무심헌 전경

오랫만에 무심헌에 들렸다. 일이 몰려 너무도 피곤했던 한 주. 새소리를 들으며, 맛있는 차를 한 잔 마시고 싶었다. 여름에 다녀온 무심헌은 청명했는데. 가을의 끝자락에 놓인 무심헌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가게에 들어서자, 주인장 릴리 언니가 반갑게 맞아주셨다. 언니는 어린 나무에서 재배한 차와 나이 많은 나무에서 재배한 차를 함께 내주었다. 둘 다 이번 해에 새롭게 수확했고, 만드는 과정은 동일했다고. 어린 나무에서 재배한 차는 풋풋한 맛이 났고. 나이 많은 나무에서 재배한 차는 조금 더 묵직하며 부드러운, 농익은 맛이 났다. 차를 내어주던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다른 맛이 나지요?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 보다는. 나이에 따라 즐길 수 있는 맛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어린 나무의 차는 풋풋한 매력이 있고. 나이가 많은 차는 숙성된 매력이 있고요." 맞는 말이었다. 다음으로는 두 가지 종류의 홍차를 내어주셨다. 하나의 품종이긴 하지만, 여러 나무에서 찻잎을 모아 만든 차와, 단 한 그루의 나무에서만 채엽한 잎으로 만든 차. 둘 다 단맛이 좋았는데. 그래도 확실히 한 그루의 나무에서 채엽한 차가 더 개성이 뚜렷했다. 다양한 차들을 비교하며 마시니, 혼자 마실 때보다 좀 더 쉽게 차에 관해 이해할 수 있었다.

차를 담는 모습
차를 담는 모습
차를 내리는 모습
차를 내리는 모습

문득 궁금해졌다. 중국에 계신 부모님의 차 사업을 이어 받아, 2대째 이어가고 있는 이분들이. 이곳에서 타깃 하는 손님은 누구일까? 그도 그럴 것이 2층은 예약제로 운영이 되는 다실이지만. 1층은 차 값도 따로 받지 않고, 다양한 차를 테이스팅하도록 해주고 있었다. 편하게 이야기하다가, 차가 필요하면 사고. 아니면, 그냥 가도 되는 쇼룸.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라고 하기에는, 친구처럼 편히 이야기를 나누다 다양하게 차를 맛보고 갈 수 있는 곳이었다. 호텔에 납품도 하고. 한국 여러 찻집들에도 납품하는 이분들이 나처럼 작은 개인 손님에게도, 정성껏 차를 내려주시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나 같은 손님이야 기껏해야 조금씩 사두고 회사에서 마시는 것이 전부인데.

내 마음을 읽었는지, 릴리 언니는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저희가 이곳 봉익동에도 티 하우스를 오픈한 건 젊은 분들이 좀 더 쉽고 편하게 일상에서 차를 즐겼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어요. 중국에서는 정말 차를 마시는 것이 일상이거든요. 많은 분들의 삶 속에 차가 그렇게 녹았으면 하는 바람이 커요.

중국에 가면 마리엔따오라는 차 시장이 있어요. 그곳 가게들에서는 좋은 품질의 차를,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가격대에 팔아요. 사람들은 마시던 차가 떨어지면, 편하게 들려 다시 사가곤 하죠. 평소에도 그냥 가서 이런저런 종류의 차를 알아보기도 하고요. 저희가 목표하는 것은 손님들이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차를 즐기셨으면 하는 거예요. 한 번에 왕창 사 가지 않더라도. 내게 맞는 차를 알아가고. 그걸 조금씩 즐기다가. 떨어지면 다시 들려 한 봉투 더 사 가고.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 평생 친구가 되는 것을 원해요. 그래서 무엇보다 한번 차를 사 가셨던 손님들이 두 번 오시고. 세 번 오실 때 참 기뻐요." .

이분들의 목표는 차근차근 이뤄지고 있는 것 같았다. 새소리를 들으며 차를 마시기 위해, 이곳으로 향하기도 했지만, 지난번 사간 홍차가 거의 떨어졌기 때문에도 겸사겸사 들렸던 터였다. 일을 할 때에는 차나 커피를 마시는데. 무심헌에서 사간 차들은 일상에서 편히 즐기기에 맛도 있고 부담도 없었다. 비록 한 번에 많은 용량은 사갈 수는 없었지만. 조금씩 차가 내 삶 속에 스며들고 있었다 .

릴리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해보았다. 무심헌이 찬찬히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사계절이 지나며, 이 한옥에 사람들의 손 때가 묻어가고. 서로를 조금씩 더 알아가고. 좋은 친구가 되어가는 모습을. 젊은 부부가 왔다가. 아이를 데리고 오고. 그 아이가 커서 여자친구를 데리고 올 수 있을 만큼 시간이 쌓인다면. 이분들이 이야기하던 그 마리엔타오에 있는 가게들과 같이 될 수 있지 않을지. 시간을 두고 찬찬히 단단하게 뿌리내리는 것을 지향하는 모습.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박지안]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의 고민과 노력이 궁금했습니다. 그들을 탐험하는 지혜의 눈(智眼)을 가지고자, 지안기행을 기록해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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