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라이프] 정든 동네를 만들어간다는 것
[도시와 라이프] 정든 동네를 만들어간다는 것
  • 음성원
  • 승인 2020.02.01 0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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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는 2003년 칠레 북부지역 슬럼가인 이키케에서 공공주택 개발사업인 킨타 몬로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는 이 프로젝트에 `점진적으로 완성해 나가는 주택` 개념을 도입했다. 집으로 지을 수 있는 면적 중 절반만 지어주고, 나머지 절반은 거주민에게 맡기는 식이었다. 완성된 집이 아니라는 뜻은 역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가 높아지는 집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칠레에서 킨타 몬로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던 비슷한 시기인 2004년 네덜란드에서도 비슷한 발상의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쇠퇴한 동네인 스팡언에서는 1유로에 집을 내주는 사업이 진행됐다. `169 클뤼스하위전(Klushuizen)` 프로젝트였다. 다만 집을 주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이 프로젝트의 진짜배기는 2년 내 스스로 리모델링하는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는 점이다. 400여 명이 지원했으나 결국 건축가와 예술가 등 42명이 끝까지 참여했다. 동네를 바꾸는 데 1명은 미약할지 모르지만 42명의 변화가 만들어 내는 힘은 크다.

"장소는 본래 의미의 중심으로서 삶의 경험으로부터 구축된다. 장소에 의미를 불어넣음으로써 개인과 집단과 사회는 공간을 장소로 만든다."

에드워드 렐프는 `장소와 장소상실(Place and Placelessness)`이란 제목의 책에서 장소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물리적 `공간`은 점유하는 사람들의 개인화 과정을 거치면서 그들에게 유의미한 `장소`로 바뀐다. 좋아하는 그림을 오랫동안 걸어 뒀다 뗀 흔적이 남아 있고, 어렸을 때 조금씩 자라는 키를 잰 흔적이 벽에 남아 있는, 추억이 쌓여 있는 집의 가치는 매우 높다. 사람들은 이런 곳에 애정을 담뿍 담아 더 잘 관리하려고 애쓴다. 미국의 한 대학 기숙사 학생들 가운데 방을 꾸미지 않은 이들은 학업을 중단하는 확률이 더 높았다는 연구도 있다. 개인화 과정은 주인의식과도 연결돼 있다.

긴 시간은 개인화 과정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낸다. 무려 5930가구의 추억이 곳곳에 담겨 있는 서울 둔촌주공아파트가 재건축 절차에 들어서자 그곳을 고향으로 여기는 이들의 `순례`가 이어졌다. 이는 다른 아파트와 다를 바 없는 물리적 공간이 각각의 개인화 과정을 거쳐 집단의 애착이 형성된 장소로 변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칠레와 네덜란드의 프로젝트가 이 애착 형성의 속도를 높여주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아라베나는 2014년 유명 강연 프로그램인 테드(TED)에서 "지역사회를 과정 속으로 끌어들이라"고 말했다. 국내 도시재생 현장에서 `주민 참여`를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윤주선 건축도시공간연구소 마을재생센터장 등은 `지속가능한 지역관리운영을 위한 다주체 참여시공 DIT 마을재생 방안`이란 제목의 논문을 통해 여러 사람이 함께 참여해 소규모 공간을 꾸미는 참여형 시공인 `DIT(Do It Together)` 기법을 제시한다. 일본 요시노라는 작은 쇠퇴 마을을 활성화하려는 시도로 주민들이 2016년 지은 마을회관 겸 숙소인 삼나무집은 시공 때부터 주민들이 참여해 애착 형성이 이뤄졌다. 2017년 10월 강력한 태풍으로 요시노강 수위가 높아져 회관이 물에 잠기자 주민들이 재빨리 모여 힘을 모아 수리와 청소를 마쳤다. 주민들의 빠른 조치 덕에 삼나무집의 피해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사회학자이자 도시계획가인 리처드 세넷은 `짓기와 거주하기`라는 책에서 `도시의 호모 파베르`라는 말을 꺼냈다. `거리를 보살피는 손길은 장소의 소유권이 사람들에게 있음을 보여준다.`(`짓기와 거주하기`) 쇠퇴하는 동네에 어떻게 호모 파베르를 확산시킬 것인가. 여기에 도시재생의 해답이 숨어 있다.

[음성원 도시건축전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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