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통해 세상을 보다] 뒷골목 숨은공간 문을 열면…폭신한 `소확행` 한잔
[커피를 통해 세상을 보다] 뒷골목 숨은공간 문을 열면…폭신한 `소확행` 한잔
  • 박지안
  • 승인 2020.05.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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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뒷자락서 맛보는 특별한 라테 / 커피스니퍼

독일의 `커피스니퍼` 단속 피해
숨어 마시던 애호가들에게 영감

라테아트 국가대표가 선보이는
대표 추천 메뉴는 `스니퍼라테`
라테 위한 우유를 직접 블렌딩해
시간 지나도 거품 사라지지 않아

자유분방한 공간 속 배려와 열정
평범한 커피도 특별한 행복으로
커피스니퍼 입간판

늦은 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피드를 읽고 있는데 유독 하나의 글이 눈에 띄었다. 라테아트 국가대표인 원선본 바리스타가 근무하는 가게의 라테가 일품이라는 내용이었다. 가게는 서울 북창동에 있었다.

다음날 점심 시간, 스마트폰 지도를 켜고 가게를 찾았다.웨스틴조선호텔 건너편, 부영호텔 공사장 근처였다. 오래된 건물이 즐비한, 정비되지 않은 좁은 골목이었다. 조금 이상했다. 사진상으로는 분명 젊음이 흐르는 세련된 곳이었는데. 설마 이 북창동 뒷골목에 그런 카페가 있다는 것일까. 골목에 들어가니 `커피스니퍼`라는 작은 입간판이 보였다. SNS에서 읽었던 커피스니퍼의 기원이 떠올랐다.

1700년대 후반 독일에서는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규제했다고 한다. 이들을 찾아내기 위해 고용한 사람들이 커피 스니퍼(Koffee Sniffer)였다. 정부가 규제해도 몰래몰래 숨어 마시던 커피 애호가들의 마음에서 영감을 받아 이 카페 이름을 커피스니퍼라고 지었다는 이야기도 함께 떠올랐다. 가게는 커피스니퍼에게 들키지 않도록 골목 뒷자락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커피스니퍼 내부의 커피스탠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동네와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공간이 펼쳐졌다. 뉴욕 뒷골목 재즈바 같은 느낌이었다. 직원들이 유니폼을 입지 않아 자유분방해 보였지만 나름의 각이 잘 잡혀 있었다. 카페 내부 구조도 독특했다. 가운데 커다란 바를 두고 나지막한 의자들을 바와 나란히 길게 배치했다. 바리스타와 손님 간 거리를 조금 더 가깝게 하려는 의도 같았다. 젊은 사람들이 주요 타깃인 것 같은데 주변을 둘러보니 중장년층 어르신도 은근히 많이 계셨다. 어르신들 마음마저 사로잡은 이곳의 비기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커피스니퍼의 대표 메뉴인 스니퍼라테

카운터로 가서 메뉴를 고민하다 스니퍼라테를 선택했다. SNS에서 많은 사람이 강력히 추천하던 메뉴였다. 주문하고 4500원을 결제한 뒤 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커피 스탠드를 바라보니 열심히 일하는 바리스타들 모습이 보기 좋았다. 카페 인테리어의 완성은 역시 바리스타인 것 같았다.

라테가 나왔다. `특별한 라테가 무엇일까` 궁금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반전이었다. 이런 라테는 처음이었다. 우유 거품이 폭신한데 은은하게 단맛이 났다. 시간이 지나도 거품이 사라지지 않았다. 과연 국가대표가 만든 라테다웠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하지 싶어 질문하니 신은수 대표가 웃으며 대답했다.

"일반 우유와 유기농 우유를 블렌딩해 폭신함과 단맛, 향미를 끌어올렸어요. 거기에 단맛을 내는 약간의 부재료도 들어갔고요."

조금 의아했다. 커피를 블렌딩한다면 몰라도 우유를 블렌딩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은 것 같은데 굳이 왜 그렇게 해야 할까.

내 마음을 눈치챈 신 대표는 대화를 이어갔다.

"헝가리에서 대회를 준비했을 때였어요. 외국 우유는 한국 우유보다 밀도가 조금 더 묵직하더라고요. 한국 우유는 단독으로 마시기에는 좋은데, 라테로 넣을 때는 조금 더 밀도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시판된 제품이 없어 결국 저희가 만들어 쓰기 시작했죠." 이 집만의 신비한 커피 비결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내친김에 질문을 하나 더 했다. "대표님께서는 세련된 카페를 왜 북창동에 오픈하신 거예요?"

신 대표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원래 이곳에 오픈하려던 것은 아니었어요. 처음 봐뒀던 자리가 아쉽게 무산된 뒤 이곳에 자리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러 오게 됐어요. `남양다방`이 있던 자리라고 했어요. 와서 보니 오래된 다방이 있던 자리인 점도 좋았고, 뒤에 커다란 먹자골목이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어요. 물론 골목 앞쪽으로 회사가 많은 것도 좋았고요. 이곳이라면 저희가 하고 싶은 꿈을 잘 펼쳐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이야기를 듣다 궁금해졌다. "대표님 꿈이 무엇이었는데요?" "저희는 커피를 매개체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었어요. 일상에서 우리가 쉽게 놓치고 있는 것들. 그것들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음을 조금 특별하게 전하고 싶기도 했고요. 평범한 커피 한잔이지만 조금만 신경 쓰면 이렇게 특별한 라테가 되잖아요."

신 대표 이야기를 들으며 어쩌면 이런 것들이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아닐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아버지를 모시고 함께 커피를 마셨다. 아버지께서도 이 집 라테가 마음에 드신 모양이었다. 산미와 감미가 부드럽게 어우러진 라테도 좋았고, 조심스레 컵을 건네던 바리스타들의 배려도 마음에 드신 것 같았다.

커피를 마시고 나오는 길, 아버지께 여쭤봤다.

▶ 커피스니퍼 찾아가는 길<br>
▶ 커피스니퍼 찾아가는 길

"젊은 사람들 취향 카페라서 불편하지는 않으셨어요?" 아버지께서는 웃으며 이야기하셨다. "저 친구들이 참 즐겁고 자유로워 보였어. 유니폼을 입지 않고 편안하게 일하는데도, 열중하는 데 흐트러지지 않더구나. 자유로우면서도 열심인 모습들이 참 보기 좋았단다. 어쩌면 직장인들이 꿈꾸는 `자유`의 단면이 이곳에 있어서 젊은 사람뿐만 아니라 중장년층도 이곳에서 매력을 느끼는 것 아닐지 모르겠구나."

아버지 말씀이 맞았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도 즐겁게 웃으면서 일하던 이들의 모습은 누가 봐도 기분을 좋게 만들고 있었다. 이들의 정성이 담긴 커피를 마시고 있노라면 오늘은 조금 특별한 하루를 보낸 것 같았으니까. 규제하더라도 커피를 마셔야겠다던 사람들의 애정과 열정. 커피스니퍼가 있던 시대의 커피 애호가들 마음이 잘 담겨 있기에 이 카페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랑받는 것 같았다. 이들의 주력 상품은 커피이기도 했지만 열정이기도 했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분석하는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이요. 그래서 진짜 소비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요즘엔 카페에 열심히 다니며, `커통세(커피를 통해 세상을 보다)`를 씁니다."

※ 더 도어(The Door)는 `공간`을 중심으로 하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입니다.

[박지안 리테일 공간 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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