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통해 세상을 보다] 무채색 따뜻한 공간서…당신의 취향을 생각한 커피
[커피를 통해 세상을 보다] 무채색 따뜻한 공간서…당신의 취향을 생각한 커피
  • 박지안
  • 승인 2020.04.16 0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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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취향에 맞춰드립니다 / 이미커피로스터스

무광·무채색 공간에 어울리는
주인 부부가 직접모은 소품들
심야식당같은 테이블 바까지

음료 메뉴는 `비스포크` 하나
고객의 취향따라 원하는 대로
페어링 디저트는 마스터 추천

기존 상권과 먼 남구로 매장
10년 이상 머물고 싶어 선택
오랫동안 의미있는 공간되길
이미커피로스터스 외관

10여 년 전 학창 시절, 시험이 끝나거나 좋은 일이 있을 때면 가던 카페가 있었다. 한적한 동교동 주택가에 자리 잡은 `이미`였다. 커피를 내리는 형과 빵을 굽는 동생이 사이좋게 운영하는 가게였다. 오렌지 한 개 안에 치즈 무스와 오렌지 껍질을 넣고 구워 내는 `오치퐁`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이 집만의 대표 메뉴였다.새콤달콤한 디저트 한입에 커피 한잔을 마시고 있노라면 그동안 받았던 스트레스가 사라져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올 수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동교동과 멀어졌지만 가끔 그때 먹던 오치퐁이 떠오르곤 했다.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는 그 집만의 메뉴였으니까. 어느 날 저녁 퇴근 후 SNS를 보고 있는데 낯익은 이름이 보였다. `이미커피로스터스`였다. 이미? 내가 아는 추억의 이미를 말하는 것인가 싶어 살펴보니 맞았다. 네 번째 매장이었다. 동교동 이미를 필두로, 스퀘어 이미, 인사동 이미, 그리고 네 번째 남구로 이미커피로스터스가 운영되고 있었다. 이미는 지난 10년 동안 뿌리내리며 차근차근 확장하고 있었다.

남구로에 오픈한 카페라니. 궁금했다. 홍대 근처에서 운영되던 카페가 어떤 연유로 남구로에 자리 잡게 된 것일까. 토요일 오후 궁금함을 품은 채 이미커피로스터스로 향했다.

남구로역 2번 출구를 지나니 인력사무소 여러 곳과 중국어로 쓰인 화려한 음식점 간판들이 보였다. 카페가 어디 있나? 한참을 둘러보다 동네 분위기와 사뭇 다른 벽돌 가게가 보였다. 이미커피로스터스였다.

이미커피로스터스 내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림 대표가 반갑게 맞이해줬다. "어서 오세요." 조용하고 차분한 가게였다. 색이 화려했던 바깥 풍경과는 전혀 다른 무채색 공간이 대비돼 도드라지고 있었다. 무광 블랙과 브라운, 한 줌의 햇빛이 공간을 차분하고 예쁘게 가꾸고 있었다.

"가게가 참 예쁘네요." 인사를 건네자 이 대표가 수줍게 웃으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저와 아내가 하나하나 모았던 소품들로 가게를 꾸며봤어요." 을지로에 직접 가서 사 왔다던 검은 무광 콘센트 하나에도 주인 부부의 취향과 마음이 담겨 있었다.

카페에는 네 명이 앉을 수 있는 기다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심야식당의 축소판 같은 곳이었다. 마스터(주인장)와 손님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소박하지만 따뜻한 공간이었다.

메뉴를 살펴보니 음료가 한 종류였다. 비스포크(bespoke). `말한 대로`라는 뜻에서 유래한 비스포크는 고객 취향을 반영해 `원하는 대로` 만들어주겠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디저트를 함께 원하면 `페어링 디저트 세트`를 시키면 됐다. 단 디저트는 손님이 선택할 수 없고 음료에 가장 어울리는 것을 마스터가 내주는 시스템이었다.

(왼쪽부터) 정성껏 커피를 내려주는 이림 대표, 바닐라러버와 드립커피 페어링세트

디저트와 커피를 함께 마시고 싶어 페어링 세트를 주문했다. 이 대표는 3가지 원두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요거트 맛이 잘 느껴진다고 알려진 `콜롬비아 엘파라이소 리치`를 드립 커피로 부탁했다. 동일한 원두로 크림을 가득 올린 커피를 마실 수도 있고, 설탕을 듬뿍 넣어 먹을 수도 있다고 했다. 누구든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맛을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디저트로 `바닐라 러버`가 나왔다. 위쪽에는 하얀 바닐라 무스가, 아래쪽에는 씹히는 맛이 좋은 크럼블이 있었다. 사이사이 들어간 바닐라 사과 절임이 밸런스를 맞춰주고 있었다. 요거트 향이 나는 커피를 한입 마시고 디저트를 먹으니 바닐라 크림이 커피 맛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줬다. 조화롭게 짝 지어지는 진정한 의미의 페어링이었다.

커피와 디저트를 한참 먹고 마시다 질문했다. 동교동 이미, 스퀘어 이미, 인사동 이미, 남구로 이미커피로스터스는 모두 다른 개성을 지닌 공간 같은데, 그렇게 만든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고. 사실 그렇지 않은가. 모든 매장을 다르게 구성하는 것보다 하나의 매장 형태로 밀고 나가는 것이 오픈하기도, 운영하기도 더 쉬울 것 같은데. 이 대표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이미는 일본어 `의미`에서 따온 말이라고, 모든 공간이 획일화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의미가 담기길 바란다고 했다.

10여 년 전 홍대에서 오픈할 때는 오치퐁 같은 이미의 독자적인 `메뉴`에만 오롯이 집중했다고. 스퀘어 이미는 동생이 빵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매장으로 오픈했고, 인사동 이미는 직장인을 위한 `테이크아웃` 매장이고. 이곳 이미커피로스터스는 조금 특별한 날에 `나를 위한 선물처럼` 찾아올 수 있는 매장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시간이 흐르며 소비 트렌드가 가성비에서 가심비를 더욱 중시하게 변한 것도 매장 형태가 바뀐 주요한 요인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앞의 세 매장보다 가장 나중에 오픈한 이미커피로스터스는 좀 더 소비자 `마음`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었다.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를 먹는 것도 좋았지만 마치 심야식당처럼 마스터와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나만의 취향이 담긴 메뉴를 주문할 수 있는 점이 포근하고 좋았다. 이 대표는 이 공간에서 손님과 눈을 맞추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면서 그들과 진정한 친구가 돼가고 있었다.

▷ 이미커피로스터스 찾아가는 길

마음속에 있던 마지막 질문도 꺼내봤다. 카페로서는 유동인구도 많고, 우량 상권으로 알려진 홍대 근처에서 운영하시던 분이 왜 남구로에 가게를 오픈하게 되셨느냐고. 이 대표는 쿨하게 대답했다.

"여기는 10년 이상 임차할 수 있었어요." 어렴풋이 임차료 때문에 이곳을 택했을 것이라고 짐작은 했는데, 이분들은 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었다. 오랫동안 걱정 없이 뿌리내릴 수 있는 공간.

"그래도 남구로는 카페 상권으로는 대중으로부터 너무 멀지 않나요?"라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소비자들이 정말 원하는 가치를 제공한다면 요즘에는 산 중턱에 카페가 있어도 찾아가더라고요. 그곳에 오랫동안 시간을 쌓으며 손님들을 기다리고 싶어요."

돌아오는 길, 마음 한편이 따뜻했다. 오늘날처럼 물자가 풍부하고 맛있는 것이 많은 시기에 진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왜 그렇게 설탕을 듬뿍 넣어 커피를 마시니? 촌스럽게"라는 타박보다 나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내 입맛에 맛있는 커피를 내려주는 가게.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나를 맞아주는 친구 같은 가게가 필요한 것은 아닐지. 여러 생각이 들었던 토요일 오후였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제가 분석하는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이요. 그래서 진짜 소비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요즘엔 카페에 열심히 다니며, `커통세(커피를 통해 세상을 보다)`를 씁니다."

※ 더 도어(The Door)는 `공간`을 중심으로 하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입니다.

[박지안 리테일 공간 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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