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기행] 매장에서 무엇을 팔아야 하는가 | 무인양품 강남점
[지안기행] 매장에서 무엇을 팔아야 하는가 | 무인양품 강남점
  • 박지안
  • 승인 2020.07.03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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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장기화되며, 리테일러들은 다양한 대안을 내놓기 시작했다. 의류나 신발 상품을 판매하는 리테일러 뿐만 아니라, 음식료를 판매하는 리테일러들까지도 온라인으로 판매 채널을 확장했다. 

온라인 판매 채널에 진출하며 이에 따른 매출은 증가했지만, 오프라인 상점 자체의 매출은 감소한 곳이 많았고 부실 점포는 정리되기 시작했다. 상권마다 차이는 있지만, 중도해지 계약 요청이 증가하고 공실률도 상승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오프라인 상권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리테일러들은 매장을 어떻게 운영해야 오프라인 상점과 온라인 판매 채널의 시너지를 창출하며 매출을 극대화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던 찰나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무인 양품이 강남역 매장을 확장 이전했다는 소식이었다. 

무인양품은 기존 255평이었던 매장을 2.5배 확장 이전하였다. 2019년 매출이 전년대비 9.8% 하락하고 영업이익도 193% 감소한 가운데, 새로운 승부수를 위해 확장 이전했다는 이야기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반일감정에 따른 불매운동은 여전히 진행중이고,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사업 환경은 더욱 악화되었을텐데. 이들은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자신있게 확장이전 하였을까? 

궁금한 마음에 향한 새로 오픈한 무인양품 강남점으로 향했다. 매장은 파고다 타워 1층에서 4층을 사용하고 있었다. 무엇이 다른가 살펴보니, 슈퍼마켓이 들어간 긴자의 무인양품처럼 1층 매장의 로컬 식품 판매가 강화되어 있었다. 

입구에서는 '밀도'가 열심히 빵을 구워 판매하고 있었다. 밀도와 무인양품 콜라보는 긍정적인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었다. 기존 무인양품에서는 직접 그 자리에서 구워낸 빵이 아니라, 공장에서 제조해온 밀봉된 자사의 빵을 팔아 아쉬움이 있었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갓 구워낸 빵을 판매하는 밀도를 매장 입구에 배치하니, 매장에 빵굽는 냄새가 퍼지며 생동감이 더해졌다. 밀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기존 밀도 매장들이 주요 리테일 상권이나 주거지 인근 상가에 나홀로 조그맣게 들어다 보니 주변 분위기에 묻혀버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곳에서는 무인양품 매장과 어우러지며 '밀도'라는 브랜드를 좀더 신선하고, 정감있게 보여주고 있었다. 

무얼 사 먹을까? 고민하며 이곳 저곳을 살펴보는데 무지 카페가 보였다. 카페에서는 음료 외에도 죽을 판매한다고 했다. 매장에서 직접 끓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업체에서 유기농 재료를 사용해 만든 죽을 데워서 판매하고 있었다. 어떤 죽을 시키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다 삼계 녹두죽을 주문했다. 조금 기다리니 무지의 상품에 담긴 삼계녹두죽이 나왔다. 카페 직원은 무지에서 판매하는 쟁반, 그릇, 수저에 삼계죽과 장아찌를 담아 내어주었다. 죽을 먹다가 마음에 드는 모든 것은 사갈 수 있었다. 죽도, 그릇도, 쟁반도, 수저도. 

반조리 죽인데도 의외로 맛이 좋았다. 인삼의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가운데 녹두가 구수하게 씹혔다. '집에 이 제품을 쟁여두었다가 하나씩 꺼내 먹어도 괜찮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젓가락도 '얇은데 손에 착 감기는 것'이 꽤나 마음에들었다. 밥을 먹으면서 괜시리 젓가락이나 하나 사볼까? 하는 구매 욕구가 일고 있었다. 

죽을 먹고 1층 매장을 둘러보니, 전반적인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과거의 무지 식품코너와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사 제품이 강조되었던 기존 무지 매장과 달리 로컬의 유명한 식자재들이 입고 되어 있었다. 무지가 아니라 초록마을인 것 같다는 착각도 함께 들었다. 매장에는 온라인에서 인기가 많은 동트는 농가의 청국장, 범산목장의 아이스크림, 요구르트가 있었다. 심지어 소녀방앗간의 나물밥 키트까지! 판매하는 제품의 가짓수가 엄청 많지는 않았지만 섬세하게 좋은 제품만 골라 판매하고 있었다. 

인터넷에서도 종종 주문하던 제품들을 매장에서 만나볼 수 있으니 좋았다. 온라인에서 주문할 땐 배송비 때문에 여러 개를 시켜야 했는데 비슷한 가격으로 조금씩 구매할 수 있어 좋았다. 인근에 산다면 퇴근길에 들려 조금씩 장을 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사고 싶고, 저것도 사고 싶고. 방문했던 무지 매장 중 가장 많은 구매욕을 일으키고 있었다. 

천천히 둘러보는데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다. 제품 옆에 책들을 한 두권씩 비치한 것. 국내 토종 술을 파는 매대 옆에는 '한잔 술, 한국의 맛' 이라는 책이 놓여 있었고, 파스타 소스 옆에는 맛있는 파스타 레시피가 적힌 '파스타 기하학'이라는 책이 놓여있었다. 일본의 츠타야가 다양한 책 가운데 관련된 물건을 조금씩 소개하는 구조였다면, 이곳은 선별된 제품을 배열하고, 이를 활용 할 수 있는 책을 조금씩 배치하여 다양하게 즐기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었다.

파스타를 쉽고 색다르게 먹을 수 있는 레시피를 보고 있으니 괜시리 간편 소스를 하나 사가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들고, 그 옆에 카레에 관련된 책을 보니 카레도 사가고 싶었다. 직원이 옆에서 설명하지 않아도 함께 배치된 책이 제품을 우아하고 조금 더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나즈막히 설명해주고 있었다. 

과잉의 시대. 부족하기보다 너무 많아서 피곤한 때. 이곳은 제품을 선별했고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제안하고 있었다. 제품의 활용법은 궁금하지만 직원의 과한 설명은 싫어하는 젊은이들의 심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이들은 소비자가 내키는 때 언제든지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상품을 적절히 제안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무지답게 간결했다. 

무지는 많은 것을 비워내고 선별적 제안을 해주는 브랜드로 젊은 세대의 호응을 받는 브랜드였다. 신촌 무지매장을 방문했을 때 한 모자의 대화가 떠올랐다. "천원짜리 물건을 모아놓은 다00 매장에 가면 훨씬 더 많은 것을 비교해볼 수 있고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여기서 사려고하니?" 라고 어머니가 아들에게 이야기하자. 갓 대학생이 된 것으로 보이는 아들은 툴툴거리며 대답했다. "아 엄마, 그게 같은것이 아니라고! 쫌" 두 모자는 서로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제품의 성능을 놓고 '가성비'를 이야기할 때, 아들은 제품을 둘러싼 브랜드 이미지와 분위기를 이야기하며 '가심비'를 논하고 있었다. 아들은 비움의 미학이 담긴 무지의 철학과 제품을 함께 사고 싶어했다. 

무인양품 강남점은 그런 무지의 강점을 극대화 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자사제품만 배치하였기에 일본적인 색채가 강해 그 낯설음과 밀봉된 느낌이 아쉬웠는데, 강남점에서는 무지의 색채는 잃지 않으면서도 현지화하고 있었다. 밀봉 되었던 많은 것들을 풀어 놓아 생생하고 밀접하게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어려운 시기 확장 이전한 강남 무지에서, 오늘날 살아남기 위해서 리테일러는 무엇을 소싱하고 어떻게 팔아야하는지 그 실마리를 조금 얻을 수 있었다.

[박지안]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의 고민과 노력이 궁금했습니다. 그들을 탐험하는 지혜의 눈(智眼)을 가지고자, 지안기행을 기록해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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